강철군화 “나라의 독립의 기초를 확고히 세우거나 독립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사람들만이 그들의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한 자는 그동안 아무리 노력을 많이 했다 하더라도 나라의 운명을 바로잡기 전에는 그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최근 <풀어쓴 독립정신>을 읽었다. <독립정신>은 구한말 쿠데타 미수 사건으로 한성감옥서에 투옥돼 있던 이승만 박사가 1904년 러일전쟁의 발발을 목격하고 쓴 국민계몽서다. 1909년 미국에서 출간됐고, 광복 후 수 차례 국내에서 중간됐으나, 구한말 문투로 되어 있어 읽기 어려웠던 것을 김충남 박사(전 청와대 비서관)과 이승만연구가 김효선씨가 현대어로 번역했다. 이승만 박사는 이 책에서 대한제국이 ‘태풍을 만난 배’와 같이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강조하는 한편, 구미(歐美) 각국의 시민혁명과 당시 우리나라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를 설명하면서 국민들에게 자주독립과 자유민권의 사상을 일깨우고 있다. 이승만 연구자인 유영익 박사는 이 책을 두고 “19세기말 20세기 초 한국인이 쓴 저술 가운데 백미(白眉)”라고 극찬한 바 있다. 중도좌파 성향의 사학자인 박명림 교수도 이 책을 두고 “근대 한국의 국내-국제정치에 관한 최고의 저서 가운데 하나”라고 평했다. 개방과 통상 강조 이 책은 여러 가지로 흥미롭다. 예컨대 이 책 제11장의 제목은 ‘우주법칙의 개요’다. 글자 그대로 지동설, 지구의 구조 등을 설명하는 장이다. 이 장을 읽으면서 가슴 한 구석이 찡해 왔다. 불과 100여 년 전 이승만 박사가 <독립정신>을 쓸 때, 지동설부터 가르쳐야 했던 그 어리석은 민족이 숱한 시련을 이겨내고 여기까지 왔다는 뿌듯함 때문이었다. 이 책 곳곳에서 ‘통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대목도 흥미로웠다. 이승만 박사는 ‘통상과 교류는 이로운 것이다’라는 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해를 끼치거나 무엇을 빼앗으러 온 것이 아니라 통상하고 교류하여 서로 이롭게 하고자 하는 것이니, 그들을 막을 수도 없고 막을 이유도 없다.....그들이 오지 않았다면 우리끼리 잘 살 수 있을 것으로 잘못 생각하고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그들을 몰아내고 외부세계와 단절하고자 한다. 그것은 외국인들을 방해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까지 위태롭게 하는 것이다.” 후록(後錄)에서도 이승만 박사는 ‘독립정신 실천 6대강령’의 가장 첫 머리에 ‘우리는 세계에 대해 개방해야 한다’를 놓고, ‘우리는 세계와 반드시 교류해야 한다’,‘통상은 서로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오늘날 통상은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근본이다’라고 되풀이 강조한다. 60년 쇄국정책으로 다 망하게 된 북한공산집단과 야합하면서 ‘우리민족끼리’를 외치는 자들, 죽창과 촛불로 한미FTA를 저지하려 발버둥치는 자들에게 들려주면 딱 좋을 얘기가 아닌가? “국민 모두가 자신의 책임을 깨달아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내 가슴을 울린 것은 이승만 박사의 ‘추상같은’ 나라사랑이었다. 이승만 박사는 이 책에서 망국의 위기에 처한 나라의 현실을 목도하면서 ‘국민 모두가 자신의 책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외친다. 나라 팔아먹은 고관대작들은 물론이고 말단관리, 상민, 심지어 천민까지도 ‘2000만 민족의 한 사람으로서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데 대해 각자가 얼마간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힘없는 백성들이 나라가 잘 되고 못 되는데 무슨 책임이 있느냐고 할 것이다. 나라와 백성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애쓴 사람들도 적지 않은데 어째서 모든 사람들이 다 책임이 있느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애국지사를 자처하는 사람들까지도 그들의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없다. 나라의 독립의 기초를 확고히 세우거나 독립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사람들만이 그들의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한 자는 그동안 아무리 노력을 많이 했다 하더라도 나라의 운명을 바로잡기 전에는 그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나는 전율했다. 그리고 나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내 딴에는 지난 10년간 열심히 좌파정권과 싸운다고 싸웠다. 나름대로 성과를 낸 것도 있었다. 남들의 박수소리를 들으면서 스스로 즐거워하기도 했다. 작년 대선에서 좌파가 패배했을 때에는 ‘이번 승리에 나도 미력이나마 일조했다’고 자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목숨을 바친 사람들만이 그들의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애국지사를 자처하는 사람들까지도 그들의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없다”는 이승만 박사의 추상같은 질타를 접하는 순간, 나는 찬물을 뒤집어쓰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과연 좌파들과 싸울 때, 나의 목숨을 걸었던 적이 있는가?’ 솔직히 없다. 그렇다면 ‘그렇지 못한 자는 그동안 아무리 노력을 많이 했다 하더라도 나라의 운명을 바로잡기 전에는 그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라는 이승만 박사의 질타 역시 내게도 유효하다 할 것이다. 촛불난동, 좌파 언론과 지식인들의 발악 등에서 보듯 나라의 운명은 아직 바로잡히지 않았다. 일개 무명소졸에 불과하지만, 나라의 운명이 바로잡히기 전까지 나는 나라가 그릇된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모두가 남들이 해주기만을 기다리기만 한다면...” 이승만 박사의 질타는 계속된다. “대장부는 넓고 영원한 하늘의 진리를 향하여 굳게 나아갈 뿐이며, 결과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우리나라에서 나라에 이익이 되는 큰 사업이나 의로운 목적을 위한 일이 성공하지 못한 것은 사람들이 노력은 하지 않고 일이 이루어지기만을 기다렸기 때문이다. 사람들 중에는 죽지 않을까, 손해를 보지 않을까 하는 등 자기들의 이해관계만 따진 결과, 의를 위해 헌신하려는 용기가 약해지고 그래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남들이 해주기만을 기다린다. 모두가 남들이 해주기만을 기다리기만 한다면 무슨 일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이 대목을 읽으며, 나는 나태하고 의타적인 이 나라 보수 세력, 이 나라의 ‘가진 자들’을 떠올렸다. 아침 일찍 고급 호텔에 모여 명사들의 조찬강연을 들으며 김대중과 노무현을 욕하고 나라걱정을 하기는 하지만, 우파 인터넷 매체나 우파 시민단체를 돕거나 우파 싱크탱크를 만들기 위해 지갑을 여는 데는 인색한 이 나라의 ‘가진 자’들.... 이들은 바로 이승만 박사가 말한 ‘노력은 하지 않고 일이 이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자들’이요, ‘죽지 않을까, 손해를 보지 않을까 하는 등 자기들의 이해관계만 따지는 자들’이며, ‘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남들이 해주기만을 기다리는 자들’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나라의 운명에 대한 국민들의 무한책임을 강조하는 이승만 박사의 외침은 <독립정신> 후록에서도 계속된다. “나 같은 사람은 무엇을 해보았자 소용이 없다거나 다른 사람들이 안 하는데 내가 해서 무엇 하느냐고 하거나, 내가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모두가 각자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자신에게 맡겨진 의무이다.” “국민 한 사람은 나라라는 큰 실타래의 실 한 올에 비유될 수 있다. 나라를 위한 자신의 직분을 제대로 할 수 없다면,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자신에게나 사회에도 오히려 나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직분을 다한 후에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나라를 위해 충성함에 있어서 용기를 가지고 행동하겠다는 결심을 해야 한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만 하고 그에 따른 어려움이나 위험을 걱정하지 말아야 하며,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하지 말고 주저하지 않고 앞으로 나가야 한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은 잠시 있다 없어지는 육신이 아니다. 의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이 명예로운 일이라는 것을 알고 육신의 고통을 이기면 이를 내려다보시는 하나님이 계시니 나라를 위한 나의 목적이 반드시 성취될 것으로 확신한다.” “Sempre Fidelis!" 문득 미국 해병대의 구호가 떠오른다. “Sempre Fidelis!" “충성을 다하라” 혹은 “무한충성”이라는 의미겠다. 이승만 박사의 <독립정신>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바로 “Sempre Fidelis!"의 정신이었다. 일제에 나라를 잃었던 국치일(國恥日)이기도 한 이 밤, 나는 자신에게 다시 한번 물어본다. “너는 정말 너의 모든 것을 걸만큼 대한민국을 사랑하느냐?” “너는 그동안 얼마나 철저하게 좌파들과 싸웠나?” “너는 정말 목숨을 걸고 대한민국을 위해 싸운 적이 있느냐?” 새삼 내 나라 사랑이 많이 모자랐음을, 내 충성이 많이 부족했음을 느낀다. 아직도 조국의 운명이 바로잡히지 못하고 있는 것은 좌파들의 탓도 아니고 이명박의 탓도 아니다. 바로 내 탓이다. 나의 애국심이, 나의 충성심이 부족했던 탓이다. 물론 앞으로도 나는 많이 부족할 것이다. 때로는 일상에 쫓기면서 나라 걱정을 뒤로 미룰 것이고, 가족을 생각하면서 위축되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이 밤 나는 내 마음 속의 군화 끈을 다시 한번 조여 맨다. 내가 많이 모자라고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지만,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모자라면 모자라는 대로 더욱 더 대한민국을 위해 나의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하면서..... 대한민국을 위하여! [독립신문 http://www.independent.co.kr/ 2008.8.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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