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보수革命' 출간!

趙甲濟의 12.19 大選 보고서.

280페이지, 1만원. 02-722-9411

조갑제닷컴

조갑제 닷컴에서 ´趙甲濟의 12.19 大選 보고서: 한국의 보수革命´이라는 新刊을 펴냈다. 280 페이지에 1만원이다. 부제는 ´민주주의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지켜냈다!´이다.

2007년의 한국을 뒤흔든 大選 政局 관찰기이자, 다시 챔피언으로 돌아온 한국의 보수층이 풀어야 할 숙제를 제시한 책이다. 2006년부터 "2007년 대선에선 한나라당 후보가 400만 표 이상 차이로 이긴다"고 공개적으로 예언하고 다녔던 필자는 보수층이 이번 기회에 스스로를 自淨하지 못하면 5년 뒤엔 또 다시 정권을 놓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역사는 2002년 12월19일이 노무현 세력의 승리 날이 아니라 패배의 시작이었다고 기록할 것이다. 무능한 세력이 권력을 잡았다고 오만해진 그날부터 좌익들의 必亡과정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똑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면 보수층은 기득권 의식을 버리고 부패를 청산하고 法治를 확립해야 하며 김정일 정권 퇴진, 자유통일, 一流국가 건설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필자는 강조했다.

서점 주문은 조선출판마케팅 <02-724-7535>, 직접 주문은 조갑제닷컴 전화 <02-722-941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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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머리글 / 좌익청산·보수自淨·法治확립

1장 도덕성 검증이 만든 「잃어버린 10년」
2장 한국 보수층 對 「김정일+노무현+김대중」
3장 청장년층의 脫좌파실용화
4장 李明博과 돈
5장 죽은 朴正熙가 산 金大中을 이기다
6장 李明博: 일머리를 아는 사람
7장 제2차 평양회담도 안 먹히고…
8장 두 李씨의 보수목장 결투
9장 카운트다운
10장 선거로써 반역을 진압하다!
11장 보수 自淨의 길
12장 一流국가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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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보수혁명´ 머리글/

보수革命의 과제: 좌익청산, 보수自淨, 法治확립

나의 작품

2007년 12월19일 대통령 선거는 李明博과 한나라당의 승리라기보다는 보수층의 승리라고 규정하는 것이 맞다. 李明博 후보는 531만 표의 大差로 이겼으나 그가 받은 지지율과 표는 2002년의 盧武鉉 후보 정도였다. 과반수 득표에도 실패했다. 보수층이 李明博, 李會昌 두 후보한테 표를 갈라주었기 때문이다. 두 李씨 표를 합하면 약64%이다. 이를 기준으로 해야 보수층의 압승이고 大勝이다. 보수층을 主語로 삼아야 선거의 의미가 제대로 보인다는 이야기이다. 보수층이 만든 大勢를 李明博과 한나라당이 잘 이용한 것이다. 정치인은 大勢를 만들 수 없고 이용만 할 뿐이란 말이 있다.
좌파정권을 끝장낸 이 선거를 ‘나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나도 한 몫 했다”는 뜻이다. 보수층은 체제가 걸린 이번 선거의 구경꾼이 아니었다.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승리에 한 몫씩을 했다. 그리하여 보수혁명의 참여자가 되었다. 그들은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보안법 폐지 반대 시위에 참석하여 물대포를 맞았다. 국민행동본부의 신문 광고를 오려서 아들과 사위에게 돌리고 후원회비를 보내주었다. 통일부에 전화를 걸어 따졌다. 직장과 학교와 고향의 후배들에게, 대한민국이 어떻게 만들어진 나라인지, 미국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朴正熙가 집권한 1961년의 삶이 어떠했는지, 1950~60년대에 취직이란 단어가 어떤 의미를 지녔던가를 울분을 토하듯이 말해주었다.
나이 70에 인터넷을 배워 20대 청년들과 댓글 싸움도 했다. 맥아더 동상을 부수려는 손자뻘 되는 철부지들에게 계란을 던진 것도 그들이었다. 이런 마음들이 모여 젊은이들을 움직이고 하늘을 감동시킨 것이다. 물론 盧武鉉이란 위대한 反面교사가 폭언과 행패로써 세 살 어린이부터 여든 살 넘은 노인들까지 국민 모두를 애국자로 만든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抗體가 만들어졌다!


12.19 大選은 세 번째의 해방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았다. 1945년 8.15 광복은 미군의 덕분이었다. 1950년 9월28일의 서울 수복은 유엔군의 덕분이었다. 2007년 12월29일 친북좌파 정권을 끝장낸 것은 우리의 힘, 한국의 민주주의였다. 진정한 의미의 자주적 국민혁명이었다. 후진국에선 총칼로만 할 수 있는 일을 한국인은 조용하게 평화적으로 해냈다. 민주주의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12.19는 무엇보다도 한국 민주주의의 승리였다.
12.19 이후 5년만에 처음으로 KBS와 MBC의 뉴스를 본다는 이들도 많았다. 이 두 방송은 언론의 탈을 쓴 친북세력의 충실한 선전원이었다. 넘어지고 무릎 꿇고 짓밟히면서도 민주주의의 불씨를 지켜온 한국의 言論史에 먹칠을 한 배신자들이었다. 김정일의 惡行을 덮고, 북한동포를 외면하고, 친북좌익 세력에 굴종하고, 대한민국에 칼질하고, 보수층을 경멸했던 두 방송은 12.19 이후엔 너무나 쉽게 李明博 찬양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좌파정권 10년은 ‘잃어버린 10년’이 아니었다. 좌익 바이러스가 대한민국이란 몸속으로 들어온 것을 살균하기 위하여 한국의 민주주의가 몸살을 앓아가면서 抗體를 만든 과정이었다. 12.19 선거는 抗體의 존재를 확인한 병리 시험의 날이었다.
좌파 10년이 아니라 좌파 15년으로 봐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1992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金大中을 약200만 표차로 누른 金泳三은 청와대에 들어가자 말자 좌익적 역사관에 세뇌되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파괴하고 보수연합 구도를 해체하는 일을 했다. 좌파가 좋아할 일만 골라서 한 그는 결국 金大中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길을 열었다. 이념무장이 안된 우파가 참모를 잘못 쓰면 좌파 宿主가 된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었다.
보수층이 한나라당에 또 다시 배신당하지 않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보수경쟁 구도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깜짝 출마를 통해서 15.1%의 득표를 한 李會昌이 선명 보수당을 창당하여 2008년 4월 총선에서 원내교섭단체를 만들 정도의 의석을 확보할지가 관심거리이다.

현대판 士大夫

한국사회의 좌경화는 1987년 6.29 민주화 선언과 1988년 盧泰愚 정부 이후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金日成은 1970년대에 이미 반공 민주화라도 민주화가 일단 이뤄지면 對南공작은 수월해진다고 예측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좌경화 20년만에 다시 우경화로 돌아선 셈이 된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1945년 이후 항상 두 세력으로부터 저항을 받아왔다. 朝鮮朝의 주자학적 명분론과 공산당의 거짓선동이다. 前者는 전근대적 守舊 세력이고 後者는 인간의 열등감과 증오심을 자극하는 데 정교한 기술을 가진 집단이다. 두 세력은 위선이 本性이고, 도덕을 凶器化한다는 데 공통점이 있다. 두 세력은 주자학과 공산주의라는 외래 사상을 우상으로 만들어 조국의 현실을 희생물로 바친 진정한 사대주의자들이다. 이 두 세력은 생리가 비슷하여 서로 통한다. 後者가 前者의 토양에 뿌리를 내렸다. 민족사상 최악의 사상적 交配(교배)였다. 소설가 李炳注(작고)의 말을 빌면, 그리하여 증오의 과학이 탄생한 것인데, 증오는 성공하고 과학은 실패했다.
이런 守舊性과 사대성을 주로 이어받은 집단은 현대판 士大夫, 정치인, 운동권, 학자, 언론인, 문학인들이었다. 12~13세기 武臣정권과 1961~1993년 군부 엘리트 집권기를 제외하면 한반도의 권력은 항상 士大夫 계층이 장악했다. 임진왜란 같은 전쟁시기에도 이 士大夫 계층이 주도권을 잡고 李舜臣 같은 名將을 괴롭혔다.
金泳三 정부는 스스로 文民정부라고 이름지었다. 여기서 文民을 士大夫로 바꿔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즉, 金泳三 金大中 盧武鉉으로 이어진 소위 민주투사 정권은 그 本性이 현대판 士大夫 정권이었다. 정권이 본질적으로 守舊性과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니 이미 一流의 단계로 진입해 있던 군인, 기업인, 과학자들이 그 아래서 고생했다.

보수自淨에 의한 法治주의 확립

12.19 大選은 조선조적 명분론과 공산당식 선동을 다 같이 극복할 수 있는 역사적 의미를 띤다. 保守세력의 승리를 가능하게 했던 民心의 변화를 나는 청장년층의 脫좌파실용화와 기성층의 反共결집이라고 규정한다. 이 두 흐름이 合流함으로써 보수 득표 64%를 기록한 것이다. 조선조적 명분론을 실용주의로 깨고 공산당식 선동은 자유 민주주의의 힘으로 무력화시키는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다.
12.19 선거를 통해서 한국의 보수층은 놀라울 정도의 균형감각을 보여주었다. 李明博 후보를 지지하면서도 BBK와 관련된 의혹은 밝혀야 한다는 태도였다. 이런 생각이 투표로썬 李明博을 대통령으로 뽑고, 국회를 통해서는 BBK 특검법을 통과시키는 국가의지로 나타났다. 국민행동본부는 이런 흐름을 이어 보수自淨 운동을 선언했다. 이 단체가 낸 성명엔 이런 구절이 있다.

<李明博 당선자가 신년사에서 ‘모든 것을 법대로 하겠다’고 천명한 것을 환영합니다. 특히 북한정권을 대함에 있어서도 원칙을 세우겠다는 자세를 적극 지지합니다. 국민행동본부도 ‘좌익청산, 보수自淨, 法治회복’을 올해의 목표로 삼겠습니다. 法이 무너지고 있는 거리에서부터 法治를 회복해야 합니다. 불법 노점상, 불법 주차, 불법 시위, 불법 쓰레기 버리기, 침 뱉기부터 단속해야 합니다. 노조의 불법 파업뿐 아니라 기업의 불법 비자금 조성도 근절시켜야 합니다. 기업 비자금이 한국 사회의 지도층을 오염시키는 저수지가 되어선 안 됩니다. 선거로써 좌파반역을 평화적으로 진압한 위대한 보수세력은 이제 거듭 태어나야 합니다. 보수의 변하지 않는 덕목은 정직, 청렴, 겸손, 용감성입니다. 보수의 손으로 보수를 깨끗하게 합시다!>

유럽과 미국의 민주주의는 法治주의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선거의 자유를 최종적으로 달성했다. 유럽의 민주주의는 1215년 영국의 마그나 카르타(대헌장)에서부터 시작되지만 여성이 투표권을 얻게 되는 것은 1930년대 이후였다. 한국은 선거가 먼저, 法治가 뒤였다. 우리는 건국 때부터 모든 국민들이 선거권을 갖게 되었으니 유럽에서 700년간에 걸쳐 발전시킨 민주주의를 공짜로 얻어 쓴 셈이다. 金大中, 盧武鉉 대통령은 선거가 法治를 파괴하는 면허증이나 되는 것처럼 헌법과 법률을 일상적으로 위반했다. 좌파 10년은 法治 파괴 10년이기도 했다. 한국의 보수혁명은 선거의 자유에 이어 法治주의를 정착시켜야 할 과제를 떠안았다. 그 방법론이 보수自淨인 것이다. 지도층이 정직하고 청렴해져야 守舊 반역 세력을 쓸어낼 수 있다.
12.19 보수혁명은 조선조적 명분론과 공산당식 선동술을 극복한 것이므로 남북한의 守舊좌익 세력에 일대 타격을 가한 셈이다. 이 세력의 사령탑은 평양의 金正日 정권이다. 북의 핵무기와 남의 친북좌익 세력을 중요한 존립기반으로 삼고 있는 金正日로서는 위기를 맞았다. 이제 한국의 보수층은 살찐 돼지처럼 뜯어먹히고 있지 않을 것이다. 친북좌익 세력의 약화가 핵무기에 대한 그의 집착을 단기적으로는 강화시키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핵무기 폐기를 위한 韓美日 국제공조의 부활로 인해 김정일은 어렵게 될 것이다.
한국의 보수혁명은 필연적으로 남북한의 김정일 세력을 뒤흔들 것이고 이는 한국이 자유통일과 一流국가로 나아가는 길목의 장애물을 치우기 쉽게 만들 것이다. 한국은 12월19일에 결정적 고비를 넘긴 셈이다. 칼자루를 잡은 것은 대한민국이고, 칼날을 잡은 것은 김정일이다.
이 책은 약 1년간 끈 12.19 선거 前後의 관찰기이다. 月刊朝鮮과 조갑제닷컴(chogabje.com)에 매월, 매일 썼던 글들이 중심이 되었다.



[독립신문 http://www.independent.co.kr/ 2008.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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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o1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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