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익 리더십에세이] ‘바른지식’이 강한 나라를 만든다
[김재익 리더십에세이]
‘바른지식’이 강한 나라를 만든다
(사) 한국형리더십개발원
‘바른지식’이 강한 나라를 만든다
- 세종의 『수시력첩법입성』 세미나 후기 -
김재익 (리더십에세이 편집장)
지난 2월 3일 한국학중앙연구원 내 장서각의 한 회의실에서『수시력첩법입성』에 대한 공동세미나가 열렸다. 이 세미나는 내가 소속되어 있는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에서 “세종을 만든, 세종시대가 만든 문헌 DB화작업”이라는 연구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열렸다. 리더십에세이에서도 몇 차례 소개되었던 이번 공동세미나에서 다룬 세종시대의 문헌은 바로『수시력첩법입성』이다.
이번 세미나를 위해 연세대 천문대 이은희 박사님께서 발표를 맡아주셨다. 그리고 균형 잡히고, 깊이 있는 논의를 위해 과학사를 전공하신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전용훈 교수님께서 논평을 맡아 주셨다. 이어 세종문헌DB사업의 연구책임자이신 박현모 세종리더십연구소 소장님과 방상근 팀장님,그리고 김영호 연구원이 참석하셨고, 그밖에 김광옥 수원여대 명예교수님과 김종근 박사님께서도참석하여 자리를 빛내주셨다.
[그림 1] 공동세미나 참석자 단체사진
수시력첩법입성이란 문헌이란
나는 이번 세미나를 위해 자료집을 준비하면서 처음으로『수시력첩법입성(授時曆捷法立成)』이라는 책을 알게 되었다. 사실『수시력』이라는 것도 원(元)나라 때 만들어져 고려와 조선시대의 천문학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것도 얼마 전에 알았던 터라, 나는 이 책을『수시력』에 대한 주석서나 주해서라고 생각했다. 부끄럽지만 책의 내용을 살펴보지 않고서 말이다.
이은희 선생님의 차분하고 꼼꼼한 발표 덕분에『수시력첩법입성』이라는 문헌이『수시력(授時曆)』을 통해서『역서(曆書)』를 만들 때, 이를 쉽고 빠르게 만들 위해 필요한 수표(數表)들을 정리한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림 2]수시력첩법입성 첫페이지
출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원문보기 서비스
[그림 3]수시력첩법입성 중간 부분
출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원문보기 서비스
[사진2]는『수시력첩법입성』문헌의 첫 번째 부분이고, [사진3]은 이 문헌의 중간 부분이다. 나에겐 알 수 없는 의미의 숫자로 구성된 이 책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형식적 측면에서 오늘날의 수표(數表)와는 다를 뿐 그 당시에도 이러한 것이 있다 것이 놀라웠다. 더욱 놀랐던 것은 토론을 맡아주셨던 전용훈 선생님의 말씀이었다. 당시의 천문과 역법 등의 사무를 주관했던 서운관(書雲觀)에서 실제 일월 계산을 하던 실무자들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칠정산내외편』을 가지고 계산했다기보다, 오히려 이 문헌을 가지고 계산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야말로 사용하기에 편한 manual book이었다는 것인데, 결국『수시력첩법입성』문헌은 실무자들이 역서(曆書)를 쉽고 빠르게 만들기 위해 여러 계산 값들을 정리하여 만든 실제 필요한 활용 기술서 이었던 것이다.
왜 세종시대의 문헌인가?
이 세미나의 커다란 주제가 ‘세종을 만든 문헌, 세종이 만든 문헌’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에, 고려 충목왕(忠穆王) 2년 1346년에 서운정(書雲正) 강보(姜保, 생몰년 미상)가 편찬했던『수시력첩법입성』문헌이 왜 세종시대의 문헌으로 볼 수 있을까? 라는 논의로 이어졌다.
이에 대해 발표자 이은희 선생님은 1423년 역법의 교정(校正)으로부터 시작한 세종의 천문역법 사업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점을 언급하셨다. 아마도 그것은『세종실록』13년 3월 2일자 기사를 두고 말씀하신 것 같은데, 역법에 교정에 대한 세종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다.
"역서(曆書)란 지극히 정세(精細)한 것이어서 일상생활에 쓰는 일들이 빠짐없이 갖추 어 기재되어 있으되, 다만 일식(日食)·월식(月食)의 경위만은 상세히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이는 고인(古人)도 역시 몰랐던 모양이니, 우리 나라는 비록 이에 정통하지 못하더라도 무방하긴 하나, 다만 우리 나라를 예로부터 문헌(文獻)의 나라로 일컬어 왔는데, 지난 경자년에 성산군(星山君) 이직(李稷)이 역법(曆法)의 교정(校正)을 건의한 지 이미 12년이 되었거니와, 만약 정밀 정확하게 교정하지 못하여 후인들의 기소(譏笑)를 사게 된다면 하지 않는 것만도 못할 것이니, 마땅히 심력을 다하여 정밀히 교정해야 될 것이다.”
『세종실록』13/3/2
이로부터 21년이 지난 1444년 세종 26년에 조선의 최초 역법서인『칠정산내편』과『칠정산외편』이 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모든 역법서들이 교정을 거쳐 조선의 활자(甲寅字)로 간행되었다.『수시력첩법입성』도 이때 다시 간행되어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현모 소장님은 세 가지 이유를 들어 이 문헌을 세종시대의 문헌으로 평가하셨다. 첫째, 1444년 갑인자로 이 책을 간행했다는 점이다. 이는 명백한 세종시대의 문헌으로 평가할 근거라는 것이다. 둘째는 천문역법에 관한 ‘바른 지식’을 정한 사례라는 점이다. 이것은『농사직설』이나『향약집성방』등의 세종시대의 대표적인 문헌처럼, 정리되지 않은 논의를 체계화하여 일종의 ‘바른 지식’을 정했다는 것인데,『수시력첩법입성』도 천문과 역학에 대한 ‘바른 지식’을 정한 사례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는 이 문헌이 실용적 활용 handbook이었다는 것이다. ‘바른 지식’을 정하고, 이를 실제로 활용했던 세종 시대의 출판문화를 엿볼 수 있는 사례로서 결국 이 문헌이 세종시대의 문헌이라는 주장이었다.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박현모 소장님의 이러한 언급은 비록 『수시력첩법입성』이 고려시대에 만들어졌지만, 세종시대의 문헌으로 볼 수 있는 충분한 근거로 볼 수 있는 해석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세종의 출판문화가 바로 박 소장님이 말씀한 ‘지식경영’의 사례가 아닐까한다.
얼마 전 중력파를 최초로 관측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이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나로서도 이것이 우주를 관측할 수 있는 하나의 척도가 생겼다는 세기적인 발견이라는 것에 놀라울 따름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첨단의 과학적 성과를 보며, 다른 나라가 선진과학 강국으로 위상을 높일 때, 우리나라는 무엇을 하고 있나하는 자괴심이 들었다. 아마도 이러한 감정은 나 혼자만의 것은 아닐 듯하다. 이웃나라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접했을 때에도 늘 우리는 부러움과 반성이 뒤따랐다. 그리고는 “장기간의 계획과 지속적인 지원”이란 해법을 꺼내놓곤 했듯이 말이다.
이쯤에서 나는 세종시대와 세종을 떠올려 본다. 구체적으로『수시력첩법입성』이라는 문헌에 대해서 말이다. 그것은 단순히 1444년에 간행한 여러 천문서적들 중의 하나라기 보다, 천문에 대한 바른 지식을 정립하기 위한 하나의 공구서로서 원(元)의 것이든, 전조(前朝) 고려시대의 것과 상관없이 실용적인 측면에 입각하여 만들어 졌다는 것이다. 어느 선생님의 말씀처럼, 이러한 세종의 정신은 한마디로 ‘조술확충(祖述擴充)’이라 할 수 있다. 자연과 학문의 원리에 대한 끝없는 탐구 정신을 바탕으로 이전의 성과들을 정리하고 축적하는 것을 통해서 새로운 무엇인가를 창조해 낸, 세종의 정신을 다시금 떠올려 본다.
나는‘세종을 만들었고, 세종이 만든 문헌들’을 조사하고 DB화하는 연구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이번 공동세미나를 통해서 나는 온고지신(溫故知新)과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세종의 정신을 다시 한 번 마음속에 그리며 자긍심과 책임감을 느껴본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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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2. 23. www.No1times.com]